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기독교의 도덕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영역에서 새로운 종류의 특별한 도덕을 설파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 아니라는 점 입니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황금률("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은 모든 사람이 속으로 늘 옳다고 생각해 온 바를 요약한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도덕선생들은 새로운 도덕을 소개한 적이 없습니다. 가짜와 괴짜들이나 새 것을 소개하는 법입니다. 존슨Samuel Johnson 박사 말처럼 "사람은 가르쳐야 할 때보다 기억시켜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모든 도덕적 스승들의 진정한 임무는, 우리가 자꾸 외면하고 싶어 하는 단순한 옛 원칙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일깨우는 것입니다. 말을 넘기 싫어하는 담장 앞으로 자꾸 끌어가고 또 끌어가듯이,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부분을 다시 보게 하고 또 보게 하듯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밝힐 것은, 기독교에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을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 적용시키기 위한 세부적 정치 프로그램이 없으며, 또 그런 것이 있노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독교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한 시대나 한 공간에 맞는 특정 프로그램은 다른 시대나 나은 장소에는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기독교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할 뿐 그 조리법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할 뿐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고사하고...
Monologue 숲지기 2013.05.05 추천 0 조회 20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고 난 뒤 나는 사람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그러나 차츰차츰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면서 내 주변의 점점 더 많은 것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그분은 나의 무지함을 통해서도 나를 인도하시고 그분의 뜻을 나타내셨다. 또 나의 죄된 성품도, 실수, 심지어 그분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까지도 때때로 나를 인도하시는데 또 그분에대해 알게 하는데 활용하셨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통해서 생각지도 못한 무수히 많은 것들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서까지도...성경을 통해 보면 더욱 놀랍다. 신접한 여인을 통해 말씀하실 때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당나귀를 통해서도 그분의 뜻을 말씀하시거나 사람들을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들에피는 들꽃과 보잘것 없는 작은 새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발견시키셨다. 가히 하나님의 Action에는 경계가 없다. 이렇게 그분의 함께 하심, 말씀하심, 인도하심을 돌이켜 볼 때 내가 멋대로 정해 노은 '그 분 영역'의 경계는 점점 넓혀지고 종국에는 사라진다.그리고 나는 좀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서 경계를 낮추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살피게 된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존재는 다 의미가 있으며 올바로 해석할 때 그 의미의 본질은 세미하게나마 하나님을 나타낸다.그분의 말씀하심과 인도하심의 방법은 수만가지 아니 정말 수천억가지도 더 될 것이다.아 그렇지! 그분은 내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의 창조주가 아니셨던가..!
Monologue 숲지기 2012.11.11 추천 0 조회 19
오늘 새벽 잠들기 전주님께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결혼에 대한 생각도 단연 많이 있었죠.여러 생각들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결국 제가 도달한 한 가지 질문이 있었는데,그건 바로  "주님 누구든 제 짝을 만나게 되면 제가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주세요!"였어요.그리고 저는 언젠가 하나님께서 내게증거를 주시길 기대하며 이제 그만 잠을 청했죠. 그때였어요!문득 제 마음가운데 희미하지만아주 또렷한 음성하나가 들렸어요!그것은 말씀이었는데,저도 잘 외우고 있는 말씀이었지만전혀 제가 생각해 낸 말씀은 아니었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제가 원했던 것의 실상은 "수동적 확신" 즉 하나님의 일방적인통보에 따른 순종. ‘그렇다면 그 사람에겐 확신있게 내 마음을 줄 수 있어 그리고 틀림없이 내게 꼭 맞는 사람일 거야!'라는 엉터리 하나님 운명론이었어요.  마음속 음성을 듣고 난 뒤 저는 저의 이러한 큰 착각을 깨닫게됐고, 동시에 제 이성과 저의 판단과 저의 결정권에 확신을 둘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얻게 됐어요. 그것은 믿음. 즉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나의 각오였어요.그 사람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결정에 달려있는존재였고 내 믿음을 그 사람에게 둘(!) 때라야 비로소 확신할 수있는 사람이었어요. 확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으로 볼 때미래형이나 현재형이 아닌과거형의 단어였어요.마치 내가 키가 크고 난 뒤에야 내가 자랐다는 걸 확신할 수 있듯이……. 이제 저는 누구에게 "저 사람과 함께 하겠어!" 라는 내 믿음을 줄지고민하기만 하면 됩니다.그리고 내가 그 믿음을 그 사람에게 주게 된 순간 그로부터는분명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보게...
Monologue 숲지기 2012.05.14 추천 0 조회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