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Ⅰ. 기존 욥기 주제들과 딜레마  기존 욥기서를 해석하는 일반적인 몇 가지의 주제들을 살펴보고, 그 해석들이 가지는 딜레마를 살펴 본다.1. 지혜문학 – 권선징악(응보의 교리)전달 목적 욥기는 흔히 잠언서, 전도서와 함께 지혜 문학으로 여겨졌다. 욥기가 그렇게 여겨진 것은 욥기가 교육을 목적으로한 일련의 교훈들을 담고 있다고 보았기 대문이다. 그리고 욥기를 통해 더 바른 삶과 선한 삶 그리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1) 욥기를 교육적 목적의 책으로 보았을 때 내용과 결론  욥기의 등장 인물인 욥은 평온한 삶을 살다가 고난을 만난뒤 욥기의 대부분을 그 고난 속에서 4명의 다른 등장인물과 인간 삶과 하나님에 대한 담화를 나눈다. 그리고 하나님의 등장과 함께 욥은 다시 이전의 평온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욥기에서 외곽틀을 차지하는 욥의 평온했던 삶에 대한 내러티브는 욥의 고난의 상황을 이끌어 내고 거기에 현실성을 더하는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을 욥기의 가장 긴 부분인 고난 가운데 담화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욥은 왜 고난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어디까지나 청중으로 하여금 그 대답을 기대하며 담화에 집중하게 만들 소산인 저자의 의도일 뿐이다. 따라서 욥기의 주제 혹은 목적은 결국 욥이 왜 고난을 받는가에 대한 대답을 논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담화를 정독하게 된 독자들이 담화를 통해 인생의 이치와 진리를 읽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으로...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5.03.17 추천 0 조회 15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양철학에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 관한 입장 정리1. 서양철학에서 정의론에 관한 입장들서양철학에서 정의론의 핵심적인 논쟁들을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1) 아리스토텔레스(목적론적 정의론) : 모든 피조물은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좋음(행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좋음'을 느끼기 위해서 이다. 인간이 '좋음'을 느끼게 해 줄수 있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이 정의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2) 토마스 홉스(사회계약설, 의무론) :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판단기준(A)'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 상태라면 늑대 처럼 그저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할 것 이다. 인간들은 함께 모여서 '사회'를 이룸으로써 경험(교육 등)을 통해 '판단기준(A)'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국가)'가 말하는 '정의'에 암묵적으로 동의(계약)한 것으로써 그 명령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3) 제레미 벤담(공리주의, 의무론) : 인간 사회에서는 항상 선(좋음)과 악(나쁨)이 공존한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인간들이 '선(좋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때도 있다(정의를 위한 개인의 의무)(소수의 인간이 '나쁨'을 느끼면, 아주 많은 인간이 '좋음'을 느낄 수 있는 경우). 즉, 정의는 사회 전체의 '좋음'의 총량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지워져야 한다. 4) 임마누엘 칸트(목적론적 의무론) : 모든 인간에게는 '판단기준(A)'이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로부터 '좋음'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정언명령'이다. 따라서 인간은 '정언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수단'이기 때문에 '정언명령'에...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5.02.10 추천 0 조회 22
마이클 프로스트, 앨런 허쉬의 「새로운 교회가 온다」 1. 저자 소개1)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 1961~ )선교적 교회 운동과 관련한 논의에서 가장 선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호주의 선교학자다. 그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몰링 대학 부설 틴슬레이 선교연구소의 설립 이사이며, 멜버른 대학교 신학부의 수석 강사이기도 하다. 그의 책들은 세계의 여러 대학들과 신학교들에서 필독서로 읽히고 있으며, 그 또한 많은 국제적인 집회들로부터 강연을 의뢰받고 있다.『바보 예수』(Jesus the Fool, IVP에서 2005년에 역간), 『일상, 하나님의 신비』(원제는 Seeing God in the Ordinary, IVP에서 2002년에 역간), 『위험한 교회』(원제는 Exiles, SFC에서 2009년에 역간) 등을 비롯한 10여 권의 신학 서적을 저술했다. 이 책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를 위한 선교적 사유와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이 책들의 인기로 그는 미국이나 영국, 또는 유럽 전역을 비롯하여 멀리 나이로비, 리오데자네이루, 그리고 모스크바의 집회에서까지 정기적으로 강연에 초청받게 되었다. 그는 시드니 북쪽의 맨리(Manly)에 자리한 ‘작은 배 큰 바다’(Small Boat Big Sea)라는 선교적 기독교 공동체의 설립자이기도 하며, 맨리 데일리(The Manly Daily)라는 신문의 주간 종교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한다. 그는 맨리의 도시들과 인도네시아의 빈곤 지역인 마나도(Manado)를 연결시켜주는 지역사회 소액 융자 기구인 ‘빈곤 퇴치운동’(Action Against Poverty)의 설립을 도왔다. 마이클은 또한 시드니의 유흥 지구에서 음주로 말미암은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세워진 성육신적 사역인 ‘거리의 목회자들’(Street Pastors) 운동을 출범시키는 산파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2) 앨런 허쉬(Alan Hirsch, 1959~ )선교 전략가이자 운동가, 선교사, 작가, 몽상가 등등 불리는 호칭도 많은,...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5.01.14 추천 0 조회 14
배덕만 교수의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서론2007년 한국교회는 100주년을 맞이하였으나 동시에 "개독교"라는 비판을 받기시작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일차적 반성이 한국 개신교의 근본주의였다. 근본주의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근본주의 이름으로 행해진 주제들을 검토하여 그 시레와 특징을 파악해본다. 1장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1.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해석들1) 사회학적 설명리처드 니버는 근본주의가 농업중심의 문화에서 산업중심의 도시문화로 급격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근대화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2) 신학적 해석에네스트 샌딘은 근본주의가 단순한 문화적 충돌의 부산물이 아닌 복잡한 신학적 논쟁과 탐구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근본주의가 최소 천년왕국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3) 문화적 해석조지 말스덴은 근본주의 탄생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포함하여 프린스턴신학, 경건주의, 부흥운동, 성결운동, 스코틀랜드 상식철학이 문화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4) 통전적 이해한편 조엘 카펜터는 근본주의의 다양한 측면들, 즉 분파적, 분리주의적 충동, 분리된 삶의 이상, 천년왕국적 세계관,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열망 등이 폭넓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러한 근본주의 정체성의 상반된 이해들 중 최소한 한가지 공통된 흐름은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근본주의는 근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옛 복음주의 문화적 이상들을 보존하려했던 저항운동이다.2.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형성 과정미국 개신교 근본주의는 19세기 중반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신학적 격변을 배경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독립혁명 이후 큰 발전을 이루며 미국인들은 낙관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들어 전쟁, 계급갈등, 법죄률, 사회적 아노미 현상, 유럽 이민자들의 급증등이 찾아왔다. 그런 가운데 독일 유학으로부터...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12.20 추천 0 조회 15
버나드 램(Bernard L. Ramm)의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1. '버나드 램(Bernard L. Ramm)' 소개램은 1916년 미국 몬타나 주의 부트라는 광산 도시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엔지니어의 아들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당시 과학의 시사적 주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과학자를 꿈꾸며 성장했다. 워싱턴 주립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의 형을 통해 복음주의를 받아들이고 회심했다. 1938년 동침례신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서부로 와서 목회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1943년 LA침례신학교 교수를 시작으로 LA성경학고, 벧엘대학, 베일러대학, 서부미국침례신학교, 메노나이트 성경 신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는 LA남가주 주립대학에서 철학으로 석사(1947)와 박사학위(1950)를 받았다.램은 계몽주의의 산물이 세계를 판이하게 바꾸어가던 시기인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한 복판이었던 미국에서 성장했다. 그가 형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는 계몽주의를 신봉하며 과학에 소망을 두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후 그가 가진 세계관은 확장되었다. 즉, 램은 계몽주의적 세계관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벗어버리고 복음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와 복음주의 양자를 포함하는 세계관으로 세계관의 확장을 일으켰던 것이다.20세기 초 개신교는 근본주의와 자유주의가 기독교 신앙의 상반된 자리에 앉아 대립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복음주의진영의 학자들은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전통의 교리를 옹호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해 고분분투하고 있었다. 버나드 램도 그 가운데 하나로 목소리를 내었다. 무엇보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발전하는 과학적 우주관과 성경의 대립이었다. 그는 1954년 [과학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 책은 그를 복음주의 내에서 일약...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11.23 추천 0 조회 14
해석학의 목표와 영역1. 해석학의 정의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 ~ 1834)는 흔히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라 알려져 있다. 해석학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의 사상과 강의노트는 뒤늦게 발견,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의 공헌, 평가들이 다시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강령의 회복은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 ~ 1911)의 업적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적 해석학을 발전시키려 했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의 노력은 신학적 해석학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문과학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였던 딜타이에 의해 철학적 해석학은 활기를 띄었다. 해석학은 19세기 초반 이후, 특히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연구를 거치면서 하나의 학문 분과 이상을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1) 성경해석학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2) 성경해석학은 이해하는 방식과 이해의 토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3) 성경해석학은 텍스트에 대한 문학적 질문과 관련된다.(4) 성경해석학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 등이 어떻게 독해에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한다.(5) 성경해석학은 어떤 내용이나 글의 효과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과정 전반을 연구한다.또한 해석학은 과연 우리가 타당하고 신뢰할만한 해석을 위한 규범이나 기준을 합의해낼 수 있는가? 하는 실천적인 질문도 포함한다.교부시대 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통상적으로 해석학은 "성경해석을 위한 규칙들"로 정의되었다. 해석학이란 대체로 주해 또는 주해하기 위한 규칙들을 의미했다. 19세기 슐라이어마허가 "해석학은 사유 기술의 일부이며 따라서 철학적이다"라고 말하면서 해석학은 과학 보다는 기술의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즉, 해석학은 단지 합리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텍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사유의 실천이 된 것이다.그럼에도 텍스트의 해석 방법을 "규칙"으로 정식화 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10.09 추천 0 조회 13
1. ‘종교’라는 용어 사용의 유용성 본 연구에서는 종교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사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종교의 의미를 유신론적 종교로 한정하든 혹은 비유신론적 종교를 포함하든 더 나아가 이념까지 포함하든 그 것은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라는 용어를 사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더 이상 종교라는 단어가 전달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말해 앞으로 논의할 어떤 대상들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종교를 사용하지 않고, 전혀 다른 의미 이를테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진리이다.’ 라는 식으로 사용한다면, 이 때의 종교라는 단어는 더 이상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단어로써의 유용성은 사라지고 대상을 수식하는 말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종교라는 단어의 유용성은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단어 외에도 이런식으로 다른 것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거짓이 아닌 진리이다.’, ‘기독교는 나쁜 것이 아닌 진리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냐? 아니냐?’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다원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종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본 연구에서 이런 식으로 종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2. 쉬운 질문 그러나 쉽지 않은 대답‘다원적’ 현대사회의 상황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이나 태도 혹은 가치판단을 가져야 하는가?1) 현대 사회의 다원적 상황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현실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종 모임에서 나와는 다른 다양한 타종교인들과 만나서 함께 일도 하고, 식사도...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09.08 추천 0 조회 14
1.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논의들우리의 삶에는 왜 악과 고통이 존재할까? 우리가 흔히 그것은 ‘악하다’라고 하는 것과 우리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감정일까? 아니면 잠재의식 속에서 주는 부조리? 아니면 단지 우리의 학습에 의한 결과인가? 아니면 역사를 통해 이어내려온 사회와 생명의 지식일까? 이 우주에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악과 고통의 문제를 왜 유보하고 계신가?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악과 고통의 문제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우리는 점점 극복해 나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가?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종교와 철학의 역사 속에서 논의 된 또 제안 된 이야기들을 크게 네 분류로 나눈다면 다음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우리가 느끼는 악과 고통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둘째, “악과 고통은 왜 존재하는가?”. 셋째, “악과 고통의 현실과 선하신 신의 존재는 양립 가능한가?”. 넷째, “악과 고통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이야기들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악에 대한 정의들과 불교의 견해, 그리고 과정 신정론에 포함되어 있다. 신정론에서는 둘째, 셋째 질문에 함께 대답하려는 시도들이 보이지만, 둘째 질문에만 대답하고자 했던 견해로는 이원론의 견해와 유대교의 견해 그리고 이레니우스의 신정론에서 보여진다. 셋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했던 견해들은 자연히 둘째 질문에 대해서도 대답이 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속하는 견해로는 낙관론의 견해, 어거스틴의 신정론, 바르트의 전통적인...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08.13 추천 0 조회 12
 고린도전서 전체의 핵심: 사랑 -13장의 위치 분석을 통하여-  I. 서론 1. 문제제기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일 년 육개월 동안 가르치고 개척하여 세운 지역교회였다. 교회는 빠른 속도로 부흥했지만, 바울의 체계적인 양육과 가르침을 받기에는 일 년 육개월이라는 시간은 조금 짧았던 듯하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를 통해 바울이 여러 가지 윤리적인 권면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1) 더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개척할 당시 그들에게 체계적인 교리적 가르침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이야기 하는 것에 집중되었던 듯하다. 따라서 고린도교회는 아직 미숙한 상태였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심지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었으나 복음에 대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교회 운영과 공동체 의식에 대해 지식의 부재를 갖고 있었다. 바울은 글로애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다각의 소식통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전해들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울은 서신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았어야 했다. 바울은 서신을 통하여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설득시키고 바른 처신을 할 수 있도록 교정하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문제들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질책과 교정을 써 내려가고 있다. 바울은 그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수사법과 문장력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설득시키고 작금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만하게 쓰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하나가 있다. 서신은 상황 대처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글은 기록으로써 변하지 않는 규정으로 남는다. 따라서 특정 상황에 대한 명확한 규범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법철학과 논리학이 말하듯 모든 법(모든 명제)에는...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07.05 추천 0 조회 12
크리스천은 7일 창조설을 믿어야 하는가?기독교의 복음은 '구원'에 관한 소식을 말한다.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이를 믿는 자는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소식이다.이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거듭나는데반드시 7일 창조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더구나 7일 창조설은 심지어 초대 교부들 조차생각하지 않았던 개념이다.한국 교회 크리스천들 중 많은 이들이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근본주의 신앙이 되어구약성경 우상화에 빠져 7일 창조설을 주장하곤 한다.그러나 '성경'은 '과학책'이 결단코 아니며,문자 그대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도 아니다.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말씀을 믿는 것을 마치 '믿음'의 시금석인 양생각하는 경우를 본다.그런 믿음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요구하는 믿음이다.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다.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갖기까지설득하시고, 기적을 보이시고, 함께하신다.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현실'의 믿음이지결단코 무대뽀적인 편집증적 믿음이 아니다.우리가 마주하는 1차적 '진리'는 바로 경험하는 '현실'이다.이 현실 세계가 비록 우리 의식에 현상 된 주관적 세계일 지라도우리가 깨어있다는 이 '현실'을 제외하곤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그 어떤 세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우리는 오직 이 현실세계에서만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구약성경의 7일 창조설은 어디까지나인과적인 존재의 근원을 말하는 '시적 표현'이다.창세기 1장은 일정한 운율을 가진 노래(시)이다.이는 어디까지나 '설화'이고, '이야기'일 뿐이지실재 과학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초대 교부들이나 심지어 구약의 출처 민족인'유대인'들 조차, 7일 창조설을 과학적 사실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도 7일 창조설을과학적 사실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7일 창조설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식한 믿음은20세기 초반 등장한 '문자주의'에 의해 주장됐고,대한민국에 선교되었다.하나님께서 7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현실'의...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5.22 추천 0 조회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