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크리스천은 7일 창조설을 믿어야 하는가?기독교의 복음은 '구원'에 관한 소식을 말한다.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이를 믿는 자는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소식이다.이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거듭나는데반드시 7일 창조설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더구나 7일 창조설은 심지어 초대 교부들 조차생각하지 않았던 개념이다.한국 교회 크리스천들 중 많은 이들이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근본주의 신앙이 되어구약성경 우상화에 빠져 7일 창조설을 주장하곤 한다.그러나 '성경'은 '과학책'이 결단코 아니며,문자 그대로 믿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도 아니다.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에도말씀을 믿는 것을 마치 '믿음'의 시금석인 양생각하는 경우를 본다.그런 믿음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요구하는 믿음이다.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디에서도'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다.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갖기까지설득하시고, 기적을 보이시고, 함께하신다.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현실'의 믿음이지결단코 무대뽀적인 편집증적 믿음이 아니다.우리가 마주하는 1차적 '진리'는 바로 경험하는 '현실'이다.이 현실 세계가 비록 우리 의식에 현상 된 주관적 세계일 지라도우리가 깨어있다는 이 '현실'을 제외하곤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그 어떤 세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우리는 오직 이 현실세계에서만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구약성경의 7일 창조설은 어디까지나인과적인 존재의 근원을 말하는 '시적 표현'이다.창세기 1장은 일정한 운율을 가진 노래(시)이다.이는 어디까지나 '설화'이고, '이야기'일 뿐이지실재 과학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초대 교부들이나 심지어 구약의 출처 민족인'유대인'들 조차, 7일 창조설을 과학적 사실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도 7일 창조설을과학적 사실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7일 창조설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식한 믿음은20세기 초반 등장한 '문자주의'에 의해 주장됐고,대한민국에 선교되었다.하나님께서 7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현실'의...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5.22 추천 0 조회 15
'축도'는 목사님만 할 수 있나요?흔히 교회에서 예배 후에 하는 '축복기도'인 '축도'는목사님들만 할 수 있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있다.그래서 전도사가 집례한 예배의 경우 '주기도문'으로 끝맺는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관행'에 불과하다.실제로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에서는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모든' 성도가'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을 갖는다.이를 종교개혁의 용어로 '전신자 제사장의 원리'라고 한다.'목사', '권사', '장로', '집사', '전도사' 이러한 교회의 '직분'은 어디까지나공동체적 '역할'을 부여하는 '직책'일 뿐,'신분'이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거듭난 신자라면,목사든 평신도든 모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축도할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권리'가 있다.거듭난 신자라면, 누구든지성만찬을 집례할 수 있고, 세례를 줄 수도 있다!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축복'이라도'매개'를 따져가면서 오지 않는다.다시말해, 매개자가 자격이 없는 탓에, 올 축복이 안오거나 하는 그딴 일은 없다.대체 하나님이 누구이시기에 '매개자' 탓에 자신이 줄 축복을 못주거나 하시겠는가??도구를 탓하는 것은 서툰 무당들이나 하는 짓이다.하나님은 심지어 '무당'을 통해서도, '당나귀'를 통해서도그 전달하고자 하시는 뜻을 전달하신다.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4.21 추천 0 조회 16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 임한다는 것은지금 여기의 '상황'과 '사회'를윤리적으로 변혁시키라는 뜻인가?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들의 나라를쉽게 떠올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그리고하나님은 자신의지고한 뜻에 따라무지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거기에 복종하는 것이 나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길이 된다고 생각한다.이는 하나님을 '가스라이팅'하는 '사이코패스'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파하지 못한다.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서 나에게 '나쁜'결과가 일어나는가?그런 가스라이팅은 '무당'들이 하는 짓거리다.무수히 많은 '인과'들 속에서 우리의 인생에 어떤 일이 발생한다해도그것은 결코 '최종 결과'일 수 없다.동양에서는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고, 서양에서 인생은 비스캣 상자라고 했다.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며늘 함께 하시는 인자하시고 건강하신 아버지 이시지,자신의 명령에 복종을 강요하는가부장적이고 자존감 낮은 아버지가 아니시다.하나님의 나라는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죽기까지 내어주신그런 하나님께서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위해 내어주시는그런 나라를 말한다.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 임한다는 것은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런 하나님과 '화목'하고'자녀'가 되어 그런 하나님의 '복지'를 누리는 '주권'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에게는 '의무'는 없고 오직 '권리'만이 존재한다.왜냐하면 모든 '의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기 때문이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자들을'구별', 즉 '판단' 혹은 '심판'하시는 분이 되실 수 있는 것이다.만약 거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의무'가 주어져야 한다면,우리도 그 나라의 일원을 선택하는데 일면의 '주주'역할을 받아야만 한다.부디, 하나님을 '가스라이팅'하는 사이코패스로 생각하지 말라!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시다.하나님은 오직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만 있으시다.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는오직 줄 수만 있고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랑이다.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3.20 추천 0 조회 15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고백교회의 일원으로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젊은 나이에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천명한 것으로잘 알려져 있다.그의 '의로워 보이는 삶'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쉽게 재고해보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본회퍼의 이론은 '모범설'에 기반한'행위주의'의 구원론을 천명한다.본회퍼의 글을 읽어보면,'제자도'라는 그럴듯한 용어에'구원'을 결부시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했다고 해석하면서그리스도의 제자도가 바로 그가 몸소 보이신'무저항의 비폭력 평화주의'라고 주장한다.본회퍼의 이러한 주장은카톨릭 교의학에서 '종교다원주의'를(좀 더 정확하게는 '포괄주의')근거지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설'에서 기인한다.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주장하기도 했던'모범설'은 쉽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구원 받는 방법의 '모범'을 보이고자성육신 하신 분이라는 것이다.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거나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은'모범설'에 있어서 거부된다.결국 '무저항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은꼭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고 있는 것임으로구원이 있을 수 있게 된다고 본다.이 것이 바로 지금 '카톨릭'에서 교의로 삼고 있는'종교 포괄주의'의 입장이다.본회퍼는 개신교 목사이면서도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제자도'를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는 그 스스로의 주장과 반대로'무저항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따르지 못했다.그는 히틀러 암살에 암묵적으로 가담했고,이에 그는 처형당한다.만약 그가 가담했던 암살 계획이 성공했다면,그는 자신의 주장과 다른 행동에뭐라고 변명했을까?본회퍼와 같은 주장들이 한국 교회에분별력 없이 말해지고 있는 것은본회퍼의 글을 읽고도 그게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우매한 지도자들의 탓이다.그들이 읽어도 알지 못하는 것은복음을 모르기 때문이다.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제자도'를 말씀하지 않으셨다.예수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고 전파하라는 의미이지'제자도'를 말씀하신게 아니다.예수...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2.20 추천 0 조회 13
이 질문에는사람들이 간과하는 '조건'이 따라붙어야 한다.'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어디에 있어서 필요하다는 것인가??만약 이 질문이'구원'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순종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 것이라면,당연코 필요하지 않다!'구원'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우리를 끊어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도존재할 수 없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장 35절)그런데 이 질문이'이 땅에서의 삶'이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라는 조건부로 묻는 것이라면,그건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크리스천이 되면 어디 공중에 떠서 혼자 사는가?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내 '존재'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지,내 '상황'과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지 않는가?크리스천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앞에백지장 같은 '인생'이란 게 펼쳐져 있다.그리고 '인생'이란 것에는수많은 '선택', 타인들과의 '관계'가포함되어 있다.크리스천이 '인생'에서수많은 '고민'과 '선택', '관계' 등을 마주할 때마다크리스천은 어떤 기준과 관점으로 그것들을 마주해야 하는가?'성경'의 교훈들은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에게 좋은 '경전'이 될 수 있다.또한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은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윤리적인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등이 필요하다.당연하지 않은가?그러나!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을교묘하게 틈타서복음과 '순종' 혹은 '윤리적인 삶'을연결 지으려는 모든 시도를분별해야 한다!부디 분별해야 한다!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1.21 추천 0 조회 17
구글에서"복음은 무엇인가?"라고 검색하면,온통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 혹은 '구원파'등의사이비 교파들의 홈페이지로 연결된다.대체 한국의 수많은 교회에서는뭘 하고 있는 것인가?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고 풀어 쓸 수 있다.기독교에서 말하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은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주셨다는 '소식'이다.          복음은 '부활'의 소식이 아니다.복음은 '윤리적 진보'의 소식도 아니다.복음은 '진정한 사회 변혁'의 소식도 아니다.복음은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의 소식도 아니다.          혹여나 복음이라는 단어에잡다한 의미들을 너저분하게 붙여놓고 있다면,그건 전부다 '장삿속'이니허리띠를 풀어 잡다한 의미들을 제거해 버리라!          복음은 결코 복잡한 것이 아니다.유사 이래 가장 '기쁜 소식'그것은 인간인 나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소식'이다.기독교의 모든 '수식어'들은이 단순한 한 문장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지결단코 복음에 이 문장을 넘어서 더 '첨언'하는 것이어서는안된다.          인간 실존에서 '죽음'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모든 문제는 '죽음'과 함께 끝난다.좀 더 논리적으로는'존재의 끝'은 '존재'에 붙어있는 모든 문제도함께 종결시킨다는 의미이다.'존재'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이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다른 그 어떤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그것은 궁극적이고 영원한 의미에서 '기쁜 소식(복음)'이 될 수 없다.          이 세계에 '기아'가 사라졌다는 소식은'기쁜 소식'이겠지만,그래서 인간에게 '고통'이 사라지는가?     혹은 '윤리적 악'이 사라진다면?'자연재해'로부터 완벽히 안전해진다면?모두가 노동하지 않고도모든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계가 된다면?그래서 인간에게 '고통'이나 '문제'가 완벽히 사라졌는가?     여전히 '죽음' 혹은 '존재의 끝' 혹은 '유한성'이떡 하니 인간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영원히 사는 삶',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보장되지 않는다면, 다른 그 어떤 문제의 해결이 났다는 소식도결단코 자랑스럽게 영원하고 궁극적인 '복음'이라고말할 수 없다.     복음우리가 진리라고 믿고우리의 인생을 다해아니 역사 이래로이것이야말로 '기쁜 소식'이다!라고 말할...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1.21 추천 0 조회 16
「복음이 죄인에게 전하는 서신」 중 18장...이번 장에서는 단편의 한 소설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에서 어떻게 ‘복음’이 ‘행위주의’로 대체되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야기될 소설은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좀처럼 ‘행위주의’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행위를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좀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한편의 ‘알레고리 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순수한 복음으로 출발한 교회가 점점 행위주의와 율법주의로 빠져드는 모습」을 「체육공원에 입장할 수 있는 순수한 조건이 시간이 지날수록 행위주의로 가게 되는 모습」에 비유하였습니다. 모쪼록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현시대 한국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깨닫고 직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초호화 체육공원 설립 및 무료이용 안내문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의 설립 취지는 체육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체육인들의 안락하고 호화로운 여가를 목적으로 설립되고 있습니다.저희 공원은 이러한 설립 목적에 따라 오직 체육을 사랑하는 체육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하였습니다.현재 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은 완공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으나 워낙 어려운 공법의 시공들로 인해 완공 시점을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움으로 인하여 미정에 두었습니다.따라서 저희는 완공되는 시점을 기점으로 일시에 공고하여 체육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즉시 공원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은 오직 체육을 사랑하시는 분들만 이용 가능하며 일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다는 점 다시 한 번 알려드리며, 완공 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어떤 도시에 이와 같은 초호화 체육공원 안내문이 공표되었다.이 공원 안내문은 순식간에 도시 언론에 공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 초호화 체육공원이 어떤...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1.03 추천 0 조회 17
복음의 역사는행위와 전적인 은혜 사이의 투쟁의 역사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고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디아 교회에는율법의 행위를 복음에 첨가시키는 세력들이 들어온다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율법주의를 경고시킨다.     시간이 지나 교회 핍박의 시대가 도래하자교회는 고문을 당하고도 '배교'하지 않은 자들을'존경'하기 시작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보다얼마나 '잘 버텨 냈는가'가신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위대한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은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구원'과 결부시키려는'이레니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오직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논증했다.     중세 교회가 부패하자유럽 곳곳에서 이단들이 기승을 부렸다.이단 지도자들은 부패한 교회의 성직자들보다훨씬 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민중들은 그 이단 지도자들에게진짜 '복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츰 교회도 '윤리'와 '도덕'을강조하기 시작했다.이윽고 부패와 만나 중세 카톨릭의'공로주의'가 탄생한다.     종교개혁가들은 '공로주의'에 반대하고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복음을 기치로종교개혁을 시행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유럽 전역에 불어닥친 '자유주의'의 물결은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따라서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타이틀은주체적 선택과 윤리적 진보를 강조하는 모양으로왜곡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유럽 개신교회의 90%이상이 '자유주의'에넘어갔고, '자유주의'에 대항하여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각성운동'은오직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고자 하는복음주의 운동 이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를 등에 업은 세력은'전천년설'을 기반으로 하는세대주의,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잠식당했다.이들은 '세속정치'의 영향력을 행사하며,교조적, 근본주의의 아집으로 뭉쳤다.그리고 복음은 다시 잊혀졌다.          20세기 중엽,'신복음주의' 물결이 번지기 시작했다.이들은 '합리적 신앙'과 '기독교 변증'을 토대로'복음'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다시 위치시키고자 했다.     신복음주의의 대표격으로 불리는'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위시하여신학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C.C.C. 창시자인 '빌 브라이트' 등신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부흥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문화적으로 부상하면서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반하여'반이성주의'와 '인본주의(휴머니즘)'이 크게 유행하였다.이에 '신복음주의'의 합리적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은크게 감소하였고,그 틈에 다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복음 Insight 숲지기 2023.12.30 추천 0 조회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