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지기에게 익명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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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내용 | 상태 |
| 2025.03.11 |
2025.03.11
안녕하세요. 교회를 다닌지 몇년째 된 사람입니다.
남들과 달리 늦게(대학교 졸업즈음)교회를 오고나서 예수님을 만나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초에 신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교회를 오면서 그 신이 예수님이라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자신은 신앙이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어떤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 신앙이 사라졌는지 근원적인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교회 지체들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고, 몇몇 한국교회와 목사님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면서 실족해왔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사적인 일로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겐 일종의 편견이 생겼습니다.
교회사람들이 위선적으로 보이고,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저 밉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떠나게 되면 지금까지 다녔던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공허한 날들을 맞이해야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공동체를 떠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들과 동화되지 못한 채 홀로 소외된 느낌을 받고, 더이상 교회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제 삶이 너무나 한탄스럽습니다.
지금은 그저 용기를 내어 교회를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다른 방안이 있는 것인지, 이런 제가 다시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긴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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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회를 다닌지 몇년째 된 사람입니다.
남들과 달리 늦게(대학교 졸업즈음)교회를 오고나서 예수님을 만나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초에 신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교회를 오면서 그 신이 예수님이라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자신은 신앙이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어떤 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 신앙이 사라졌는지 근원적인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교회 지체들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고, 몇몇 한국교회와 목사님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보면서 실족해왔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사적인 일로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겐 일종의 편견이 생겼습니다.
교회사람들이 위선적으로 보이고,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저 밉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떠나게 되면 지금까지 다녔던 시간이 무의미해지고, 공허한 날들을 맞이해야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공동체를 떠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들과 동화되지 못한 채 홀로 소외된 느낌을 받고, 더이상 교회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제 삶이 너무나 한탄스럽습니다.
지금은 그저 용기를 내어 교회를 떠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다른 방안이 있는 것인지, 이런 제가 다시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긴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1. 종교란 무엇일까?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종교란 무엇일까요? 현대에 와서는 유물론적 사고에 젖어 단지 마음의 수양이나 행복한 삶을 위해 종교를 갖는 유물론적 종교인들도 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교양활동이나 웰빙활동으로 하는 하나의 활동일 뿐입니다. 실제 신앙인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종교는 왜 있으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신앙인이 될까요? 그것은 바로 '신'과의 '커뮤니케이션' 입니다.
어느 종교든지 '신'이 있습니다. 물론 유교 처럼 '신'이라고하는 뚜렷한 개념이 없는 이신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모든 종교가 상정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신'이 없는 종교행위는 단지 하나의 문화의식이나 형식에 불과함으로 종교라고 할 수 없지요. 이처럼 종교는 '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상정하고, 그 '신'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하거나, 그 신에게 귀의 하거나, 신을 만족시켜 원하는 것을 얻거나, 신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신으로 부터 기적을 얻어내거나 혹은 기적을 경험하길 원하거나 하는 모든 활동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종교란, '신'이 있는데, 그 '신'과 모종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을 정해놓은 것 입니다. 그리고 종교활동이란 그 방법을 수행하며 사는 것 이지요. 불교나 인도종교의 경우 수행을 통해 신께 귀의하려고 하는 종교 입니다. 이슬람이나 유대교는 신이 정해 놓은 규율을 지킴으로 신으로 부터 무죄 판결을 받으려고 하는 종교 입니다. 무당이나 점성술 같은 경우 어떤 의식등을 통해 신으로 부터 궁금한 것에 대한 대답을 듣는 종교라고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종교라고 하는 것은 신과의 커뮤니케이션 방법론 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떨까요?
2.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종의 조건(믿음)을 통하여 신(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천국에 도달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삶이며 구원받은 성도의 궁극적인 본향과 진정한 인생은 죽음 이후 '내세(천국)'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구원에 대한 개념이 다른 종교들에도 있습니다. 당연히 신을 상정하고 있는 종교에서는 죽음 이후에 대해 대답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요. 따라서 모든 종교에는 구원관이 포함되어 있으나 구원이 핵심인 종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기독교를 제외하고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나 몇몇 이단들이 있을 것 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구원을 본질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현제의 삶이나 선한 행위, 혹은 수행, 혹은 모종의 의식들 등에 그 종교의 본질이 있지요. 이러한 차이는 구원이라고 하는 것을 '은혜'로 얻는다고 하는 기독교의 아주 독특하고 유일한 구원관 때문에 생깁니다. 다른 모든 종교에서 '내세'는 현세에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결과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내세가 아니라 현세가 중요해 집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세'의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집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세가 아니라 내세의 소망이 중요해 지며 따라서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론'에 있게 됩니다.
3. 기독교의 세계관과 이 세상의 불완전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멸망할 세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거듭해서 이 세계의 종말과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천국이 예비되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악에 빠졌으며,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온전히 의롭게 살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한 은혜의 죄사함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인간도 완전한 선이신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고 인정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에 빠졌으며 불완전하다는 말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봅시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거짓이 없고, 가식이 없으며, 숨은 목적이나 의도가 없을 때 우리는 그 말이나 행동을 선하다고 합니다. 이 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정언명제'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웃을 도왔다.'라고 했을 때, 내가 이웃을 도운 숨은 의도(예:돈을 꾸려고..)가 없고, 그 행동이 정직했을 때 우리는 이를 '정언명제'라고 합니다. 반대로,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거짓되거나, 숨은 의도나 목적이 있을 때 우리는 그 말이나 행동을 악하다고 합니다. 이 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가언명제'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내가 돈을 꾸려고 잘보이기 위해 이웃을 도왔다.'라는 것은 사실 그 이웃을 도운 행동과 그 행동의 주체자인 나의 본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가언명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절대로 온전히 '정언명제'만을 행하고 살 수 없습니다. 왜 그 것이 불가피 한지 유명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던 중 사슴이 나타나서 나무꾼에게 말했습니다. "사냥꾼이 저를 쫓아 옵니다. 저를 좀 숨겨 주실수 있으신가요?" 그래서 나무꾼이 "내가 너를 숨겨주기로 약속하마!"라고 말하고 나뭇더미 안에 사슴을 숨겨주었습니다. 잠시 후 사냥꾼이 나타나서 나무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 사슴을 보았소? 솔찍하게 말해주시오.." 자, 이 때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사슴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는 사냥꾼에 대한 가언명제 입니다. 그리고 솔찍하게 사슴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사슴에 대한 가언명제 입니다. 나무꾼은 가언명제 왜에는 선택의 도리가 없습니다.]
이 예를 통해 들어나는 가언명제의 불가피성은 '정언과 정언이 충돌할 때는 대안이 없다.'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요? 그 이유는 나무꾼이 사슴을 잡으려고 하는데 사슴은 원하지 않는 상황 때문입니다. 즉 '가언적상황'이 결국 나무꾼으로 하여금 가언명제를 행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 입니다.
논리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모든 상황 또한 '온전히 선하기만' 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온전히 선하기만 한' 사람들만 살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과 악한 상황들이 존재 합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우리가 온전히 선하게만 사는 것은 불가능 하며, 이로써 기독교의 전제인 '인간은 이 땅에서 온전히 의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4. 외국인과 맛집
기독교는 이 세상에 거짓과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터럭만큼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론에 있으며, 그 구원 또한 인간의 어떤 행위가 아니라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은혜로 주어집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한 외국인이 한국의 비빔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 외국인은 비빔밥을 맛보겠노라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외국인이 기대감을 가지고 한 비빔밥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비빔밥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은 사실 그다지 맛있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왔다면 백종원 아저씨에게 크게 혼났을 법한 그런 식당이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서비스나 위생상태도 엉망이었지요. 그러나 그 외국인은 그 식당이 맛있는 식당인지 아닌지 구별할 재간이 없습니다. 외국인은 기대감을 가지고 비빔밥을 맛보았지만 다 먹고 난 뒤 실망합니다. '이게 비빔밥이었다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아주 맛있는 환상적인 맛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맛없는 개밥 같구나..식당도 너무 더러워..!' 그리고 외국인은 이제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외국인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드나요?? 저라면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아니 비빔밥이 맛이 없었다고요?? 분명 당신은 맛없는 집에 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비빔밥을 제대로 맛보려면 비빔밥을 제대로 하는 한정식집에 가야해요! 당장 따라 오세요! 제가 진짜 비빔밥의 맛을 맛보게 해드리지요! 여기까지 와 놓고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안됩니다..!!"
5. 맛집 비유의 해석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론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은혜이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그 구원과 사랑을 진정으로 맛본다면, 감격하지 않을 수 없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교회의 사람과 매스컴에서 나오는 목사들의 범죄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맛없는 비빔밥에 실망하기만 하고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외국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빔밥의 본질은 싱싱한 재료와 장국의 맛과 고추장 양념의 맛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정말 제대로 된 비빔밥을 먹고도 비빔밥이 맛이 없다고 말할 인간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기독교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바 하나님은 너무너무 매력적인 분이셔서 시간을 두고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절대로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분 입니다. 입으로는 그분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가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진정으로 그분을 믿지만 이 세상의 불완전함 때문에 그리고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여전히 때때로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만약 다녔던 그 교회에 그런 사람이 많았다면 더더욱 엉터리 비빔밥 식당을 찾아간 샘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하고 교제합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 중에는 맛집도 있고, 엉터리 식당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나 천국의 소망이나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과 기쁨이 없고, 성도간의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교회라면 우리는 분별하여 그 교회를 나와 건강하고 성령이 넘치는 교회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몇번 맛없는 비빔밥 식당을 돌아보고 '비빔밥이 다 이렇구나.'라고 실망해 버린다면 이처럼 애석한 일이 없지요..
6. 결론
구원의 감격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다시 한번 찾아 보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인 구원과 하나님에 대해 맛보시기를 부디 부탁드립니다. 비빔밥이 무엇인지 정말로 안다면, 비빔밥이 결코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한다면, 결코 지금 한국 교회에 비춰지고 있는 안타까운 교회의 현실에도 기독교에 대해 실망할 수는 없습니다. 한가지 어려운 점은 요즘은 정말 맛집 찾기가 어려워 진 것 처럼(제가 어릴 때는 어느 식당을 가도 왠만하면 다 맛있었는데 말입니다..;;;) 성령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 또한 찾기가 어려워 진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그러나 비빔밥의 맛을 안다면 맛집이 없는 식당들에 실망할 지언정 비빔밥에 실망할 수는 없는 법 입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맛집을 찾아 냅시다.
맛을 잃어버린 식당을 떠나 새로운 단골맛집을 찾아나섭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좋은 교회로 인도해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감격에 기쁨과 은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 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그래 이맛이야!!'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저도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