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지기에게 익명 Q&A
• 익명으로 작성되며, 단 질문의 내용은 공개됩니다.
• 답글은 숲지기가 달아드립니다.
| 작성일 | 내용 | 상태 |
| 2025.03.02 |
2025.03.02
숲지기님 사무엘상하에서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많은 질문들을 하는걸 보게됩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싸울까요? 그들을 내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이런식으로 물어보고 하나님이 넘겨주신다고 했을때 나가서 싸워 이기는 모습, 심지어 어떻게 공격하면 좋은지도 물어보고 하나님은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다윗은 싸우러나갈때 항상 결과를 알고 나간거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어떤 문제에서 결과에대해 하나님한테 물어보는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아니면 결과를 생각하지말고 과정에서 하나님께 물어봐야하는지 고민을하게됩니다.
계획하는 문제에있어서 결론을 하나님앞에 딱 두고 가는게 맞는건가요?
하다보니깐 하나님이 열어주신거같아 가 맞는건가요??
답변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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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지기님 사무엘상하에서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많은 질문들을 하는걸 보게됩니다.
블레셋 사람들과싸울까요? 그들을 내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이런식으로 물어보고 하나님이 넘겨주신다고 했을때 나가서 싸워 이기는 모습, 심지어 어떻게 공격하면 좋은지도 물어보고 하나님은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다윗은 싸우러나갈때 항상 결과를 알고 나간거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어떤 문제에서 결과에대해 하나님한테 물어보는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아니면 결과를 생각하지말고 과정에서 하나님께 물어봐야하는지 고민을하게됩니다.
계획하는 문제에있어서 결론을 하나님앞에 딱 두고 가는게 맞는건가요?
하다보니깐 하나님이 열어주신거같아 가 맞는건가요??
1.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
우리가 흔히 교회를 다니며 생각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예언하시기도 하시며, 미리 예비 해 놓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오해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사실 결정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하나님 또한 우리 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입니다. 하나님께는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 그분 자체가 빛이시고, 그 빛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 변함없는 빛 입니다.
2. 시간이란?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바나나를 보고 '바나나'라는 단어로 이름붙였습니다. '시간'이라고 하는 단어도 인간이 만든 단어 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 것 일까요? 그것은 바로 '변화'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태양은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집니다.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오고 이어서 겨울이 옵니다. 생명은 자라나고 또 늙습니다. 혹은 이런 변화도 있습니다. 축구공을 내가 발로 찼더니 여기에서 저기로 변화했습니다. 짐을 옮겼더니 짐의 위치가 변화했습니다. 내가 걸어갔더니 나의 위치가 변화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을 보고 인간은 '시간이 흘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시간이라고 하는 선이 흐름에 따라 어떤 것이 변화한다고 묘사한 것 입니다. 이러한 묘사 때문에 '시간'이 마치 독립된 어떤 것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변화' 그 자체가 '시간' 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우주를 한번 상상해 봅시다. 그 우주에도 시간이 있을까요? 있다고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그건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내는 시간일 뿐이지 정말 그런 텅빈 우주가 있다고 한다면 그 우주에는 시간이라고 정의할수 있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 텅빈 우주에는 '변화'가 없으며 따라서 '시간'도 없습니다. 시간은 '변화'하는 양상을 보고 이름 붙인 말 입니다.(현대의 1초라는 물리적인 시간은 세슘원자가 9,192,631,770번 진동하는 변화를 1초로 정의합니다.)
3. 하나님에게 시간은 있는가?
앞서 우리가 알아본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변화'를 두고 붙인 개념이라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도 '시간'이 있을까요? 이 말은 "하나님께도 '변화'가 있을까요?" 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화하지 않으십니다.(지난번 질문에서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을 이름 붙일 어떤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습니다.
4.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SF영화나 소설에서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를 상상하곤 합니다. 기계를 타고 과거든 미래든 여행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영화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간이라는 것이 길게 늘어져 있는 선과 같아서 그 선에서 점프할 수만 있다면 과거도 미래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상상에는 모순이 존재합니다. 시간이 만약 선과 같이 늘어져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단지 이미 모두 결정되어 있는 그 시간의 선을 순서대로 지나가며 살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그 어떤 자유의지나 선택의 권리 혹은 우리의 갈등 더 나아가 인격까지 모두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단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에 불과하며 우리도 그 기계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시스템에 인격이나 자유가 있을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히 선택의 자유와 인격이 존재합니다.
정리하자면,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인격이나 자유의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고민하는 인격과 선택의 자유가 분명 존재합니다. 따라서 모순이 생깁니다.
우리는 비디오테이프에 따라서 재생되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의식과, 인격과, 자유의지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변화'에 대한 일련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정된 미래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이 세계 전체가 그렇습니다.
과거와 미래라는 말은 우리가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않은 시간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이 있다고 해서 실제로 과거가 지금도 실제하며, 미래가 지금도 실제하여 타임머신만 있다면 그리로 가거나 올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미래는 실제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변화'의 그 최종적인 끝인 '현재'만 존재합니다. 과거와 미래는 '지나간, 아직 오지 않은'이라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이 세계는 '변화'하면서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5. 하나님과 미래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어떨까요? 앞서 살펴 보았듯이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고 또 우리와 관계하시고 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속한 시간에 관여하고 계신 것 입니다. 우리가 소설을 쓴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작가로써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관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소설속 주인공의 '시간' 속에서 관여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소설 속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장면을 쓰고 있다고 할 때 우리의 그 말은 소설속의 주인공에게 그 주인공의 시간 속에서 들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반쯤 쓰고 한시간 쉬었다가 나머지를 썼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한시간 쉬었다가 말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여하실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의 시간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관여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저는 지금 사실 당연한 말을 어렵게 설명 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여하실 때는 우리의 시간속에서 관여하고 계신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간에 과거나 미래따위는 실제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미래가 있다고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는 시간이 없으므로 미래는 당연히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미래는 실제하지 않는데 도대체 하나님께서 미래에 계신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에서 예비하고 계신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듯 미래에도 함께 하실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지 미래가 실제하여 하나님께서 거기에 기다리고 계신다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지금 우리와 함께 계속 계십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그분의 지혜로 인해 가능하며, 하나님의 예언은 그분의 변함없는 의지를 말합니다.(ex. 내가 꼭 다시 오리라!)
6. 하나님은 다윗에게 싸움의 결과를 알려주셨는데 그 것은 무엇?
인간의 아무리 커다란 사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지혜를 짜 낸다고 한들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어리석음이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일의 결과를 알려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이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미래를 알려주시는 의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해하면 안됩니다.
7. 우리도 결과를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과정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
결과를 물어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 일에 나와 함께 하실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 입니다. 다른말로 바꾸자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지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또 더 나아가 나의 뜻과 소원을 말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다윗처럼!) 당연히 우리도 일의 결과를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꼭 결과를 모르겠을때에도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물어물어 갈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꼭 원하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기 때문에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기도 하십니다.
왜 이와 같이 양립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결정되어 있는 미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그리고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실 것인가? 혹은 내 지혜 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8. 선택과 계획의 문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앙서적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됩니다. 뭐 음성을 들어야 한다 혹은 말씀의 증거를 받아야 한다 혹은 영적 지도자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혹은 세번 이상의 동일한 싸인이 있어야 한다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실 인생에는 꼭 커다란 선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선택까지 매우 다양하고 빈도수 높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순간들 마다 이러한 방법들을 사용하기란 현실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그리고 두서없기도 하지요... 이와 같은 방법들이 꼭 나쁘다 혹은 어느것이 맞다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방법들이 다 선하고 또 때때로 실제 유용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명확하게 전제해야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 개념은 바로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신다.(Where is God? In my Heart.)"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은 우리의 영혼 속에 존재하십니다.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격과 하나되어 존재하십니다. 그분은 교회에, 하늘에, 성경 속에, 내 옆에, 미래에, 과거에, 영적인 특별한 사람에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바로 내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나면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어딜지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그 곳은 바로 나의 마음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제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 밖에서 아무리 찾으려고 애써봐야 늘 의심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말은 무슨말일까요?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하나님은 우리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시지 않고, 우리와 하나되어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소원함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고싶게' 만드신다는 것 입니다. 요나서를 살펴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나 요나는 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갔지요. 그런데 가는길에 요나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지요. 이 이야기를 인간의 입장에서만 보면 마치 하나님 말을 듣지 않은 요나가 벌받고 정신차리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시스로 가는배' 혹은 '풍랑' 혹은 '커다란 물고기'등을 사용하셔서 요나의 마음을 돌리고 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요나의 마음을 강제로 억누르고 그저 순종하기만을 기대하고 계시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지요. 하나님은 "너의 의지와 생각과 주장을 꺾고 나의 명령에 무조껀 복종하라!!"라고 말씀하시는 폭군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터무니 없는 나의 고집일지라도 나의 의견과 주장을 존중하시고, 대화하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내가 마음을 돌일 킬 수 있도록 설득하시고, 때때로 오히려 내 고집 편을 들어주시기도 하시는 아주 자상한 아버지십니다. 폭군이 아니고, 아버지십니다.
자주자주 우리는 우리의 진짜 원함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혼동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것을 고르지요. 우리도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과 계획에 앞서 가장 먼저 하나님과 이야기 나눠야 할 부분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입니다. "내가 진짜로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요..?"라고 먼저 묻고 진솔하게 나의 상황과 또 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서서히 드러나고, 그렇게 발견된 소망은 때때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도 합니다.
9. 결론
현재를 삽시다. 하나님은 미래에 계시지도 과거에 계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여기 내 안에 계십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기도를 꼭 무릎꿇고, 두손모으고,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큰 오해 입니다. 결혼해서 늘 함께하는 부부는 시간을 정해서 카페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지 하고 싶을 때 어떤 상황에도 대화할수 있습니다. 지금 나와 하나님은 부부보다 더 가까이 붙어있습니다. 무려 내 안에 계시지요. 내가 그분께 말을 걸면 안되는 거룩하지 못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에도 그분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물리적인 '음성'에 집착하는 것 또한 큰 오해입니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은 물리적인 음성을 들려주시는 기적을 배푸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궂이 그런 방법을 자주 쓰겠습니까? 침대에서 바로 옆에 함께 누어있는 부부가 대화를 위해 전화를 거는 모양은 좀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을 걸 때 하나님께서 나와 대화하시는 방법은 나의 생각을 넓히시고, 지혜를 더하시고, 소원을 발견하게 하시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긍휼한 마음을 주시며, 기쁨을 주시고, 감동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계십니다. 가장 쉽고 또 당연한 방법은 나에게 생각과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윗이 되어 봅시다. 전쟁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각이 전쟁을 넘어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우리는 단순히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다시는 이 나라에 저들이 처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당연히 그것을 원하시리라는 것을 알겠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전쟁에서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에 나갔고,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한번 이긴 것으로 다시는 처들어 오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다시 우리의 생각이 넓어집니다. 이들이 그저 기세에 눌려 진다면, 이들은 다시 처들어 올 것이다. 우리가 저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실증해야만 한다. 그것은 정면대결이 아니라 머리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들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알면 다시는 처들어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계략이 떠오릅니다. 매복지역을 찾아 매복하여 기습하자. 저들이 예상하지 못한 허를 찌르면 저들이 다시는 처들어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지혜가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매복하여 기습하였고, 승리하였습니다.
역대상 14장 16, 17절
이에 다윗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쳐서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
다윗의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고 여호와께서 모든 이방 민족으로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더라
결과는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상한 아버지 처럼 우리의 원하는 것에 귀기울이시고, 우리의 생각을 넓히셔서 우리를 설득하시기도 하시며,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을 더하심으로 담대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바울 이후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천재를 꼽으라면 초대 교부였던 성 어거스틴을 꼽는데 큰 이견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한 말을 마지막으로 대답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 -성 어거스틴-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글쓰는 내내 저도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