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Monologue 숲지기 2014.07.03 추천 0 조회 23
이보다 더 심한 반대가 예상되는?실제로도 반대가 있었던?부분은, 제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단어를 ‘기독교의 공통되는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대체 당신이 뭐라고, 누구는 그리스도인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인가?” “이런 교리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교리들을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참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정신에 훨씬 더 가깝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은가?”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옳고 지극히 관대하며 지극히 정신적이고 지극히 민감한 의견입니다. 갖출 수 있는 좋은 특징은 다 갖추고 있지요. 단 하나, 유용성만 빼고 말입니다. 이 반대자들이 원하는 대로 언어를 사용하다가는 심각한 곤경에 빠지지 않을 길이 없습니다. 이보다 훨씬 덜 중요한 다른 단어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해 봅시다. ‘신사’(gentleman)는 본래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어떤 존재, 즉 문장(紋章)을 수놓은 외투를 입고 다니며 상당한 땅을 소유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신사’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에 관련된 사실을 진술하는 말에 불과했지요. 또 누군가를 두고 ‘신사’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그를 욕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에 관해 사실적 정보를 주는 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임스는 아둔한 군인이다’라는 말에 모순이 없듯이, ‘존은 거짓말쟁이 신사다’라는 말에도 하등 모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지극히 옳고 관대하며 정신적이고 민감하지만 유용성은 전혀 없게도, “신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이나 땅이 아니라 행실이 아니겠는가? 신사답게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신사가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Monologue 숲지기 2014.07.02 추천 0 조회 26
복음주의와 율법주의의 예리한 차이점은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느냐 여기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복음주의와 율법주의는 모두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지난 시절 전통적인 율법주의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행위를 구원과 결부시킨다고 하는데 있어 복음주의와의 차이점 이었다.이는 구교와 신교의 차이점으로, 교회 강단에서는 복음과 행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행위는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결과가 된다고 말함으로 써 이 차이를 명확히 하곤 했다.그러나 현대 교회 안에 창궐하고 있는 새로운 율법주의는 이 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예리한 차이점을 가지고 우리 신앙의 중심부 까지 파고 들기에 이를 간파하는 이들도 또 경고하는 이들도 적은 듯 하다. 이를 두고 율법주의라고 지칭하는 것도 이 글에서 내가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그 차이점이란 내가 볼 때 두개의 잘못된 명제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틈새를 가중시키는 형식인데, 하나는 특정 기질이 아닌 단일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교만이다.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이 아니라도 가끔 좋은 샷을 날릴 수 있다. 우리가 테니스를 점심 내기로 한번 치는 사람이라면 어쩌다 날린 좋은 샷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테니스 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샷을 날릴 수 있는 일정한 상태나 특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특정 행동이 아니라 바로 이런 특질을 가리키는 말이다.이 사실을 간과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그릇된 생각을 조장하게 된다.(1) 옳은 행동을 하기만 하면, 어떻게 왜 그 행동을 했느냐-기꺼이 했느냐 마지못해 했느냐,...
Monologue 숲지기 2014.07.01 추천 0 조회 24
"지하실에 쥐가 있을 때에는 갑자기 들어가 봐야 잘 볼 수 있는 법입니다. 갑자기 들어갔다고 해서 없던 쥐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쥐들이 숨을 틈이 없어지는 것뿐이지요. 마찬가지로 갑자기 화를 돋우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좋았던 성질이 갑자기 못되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갑작스러운 상황이 내 못된 성질을 드러내 주었을 뿐입니다. 지하실에 늘 쥐가 있어도 들어갈 때 소리를 지르고 시끄럽게 굴면 불을 켜기 전에 다 숨어 버리게 마련입니다. 제 영혼의 지하실에는 분명히 분노와 복수심이라는 쥐가 늘 살고 있습니다.""저는 직접적인 도덕적 노력으로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처음 몇 단계의 삶을 거쳐 보면, 우리 영혼에 정말 필요한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 온 표현에 어떤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지금까지 저는 마치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모든 일을 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하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 중심성과 욕심과 불평과 반항심 가득한 이 인간이라는 동물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이지요. “이 자들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라고 생각하자.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었으니, 이 자들도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그와 비슷하다. 영적으로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자.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런 척하자. 이 가장이 현실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 하나님은 여러분을 마치 작은 그리스도 보듯 하십니다....
Monologue 숲지기 2014.04.27 추천 0 조회 20
수 많은 책들이 씌여지고 있다.책을 읽을 수 있는 수단도 스마트해졌다.출판사들은 저마다 마케팅 경쟁에서 이기기위해여기저기 눈만 돌리면 책광고를 접할 수 있다.무분별한 독서를 아주 민감하게 경계하여야한다.우리의 생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혹은 기대하는 것 보다)훨씬 약하고 부패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베스트 셀러라면 공인되고 공증된 좋은 책인줄 안다.유명한 사람 이 추천하면 또 그렇다.책은 많이 읽으면 좋은 줄 알고,책을 읽은 만큼 생각이 넓어질 줄 안다.교양이랍시고 비진리 가운데 씌여진 책들을 읽어 보기도 한다.책장에 책이 많이 꽂혀있으면 뿌듯해 한다.한번 다 읽은 책은 다 읽은 줄 알고 또 안읽는다.(웃기시네!!ㅋ)책을 읽는다는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다.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은 언급했던것과 마찮가지로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때 거기에 동화되고 설득당하기 쉽다.꼭 다른 신념의 생각을 읽어야 할 상황이라면상당히 주의하며 읽어내려가야 한다."비진리의 책들을 깨우쳐야 내 주장이 진리인지를 더욱 명확히 주장할 수 있을 것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이는 마치 "이 우물에 들어가 이것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아야 우물이 깊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생각이다.또 "나는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을 고수 할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큰 위험에 빠진 사람이 아닐수 없다. 사탄은 지금 당신의 그 자만심을 이용해 당신을 넘어뜨리기 일보직전에 있다. 그 교만한 생각을 어서 버려야 한다.이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한다. 아무책이나 읽지말라. 차라리 읽지나 말라. 당신은 아직 진리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누구든지 이...
Monologue 숲지기 2014.02.14 추천 0 조회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