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1. ‘έλάβομεν[엘라보멘](우리가 받았다)’헬라어 동사의 경우 주어를 포함한다. 이 단어의 경우 1인칭 복수형, 즉 ‘우리’라는 주어를 가진 동사로 쓰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즉,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는 이 단락에서 자신의 사도권이,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사도’라는 집단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그가 이미 ‘고린도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공격받았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2. ‘ύπακοήν πίστεως[휘파코엔 피스테오스](믿음의 순종)’‘믿음의 순종’이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생각하기에 “사도라는 직분으로 부르심에 순종하였는데,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다.”라는 의미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여기서 ‘πίστεως[피스테오스](믿음의)’라는 단어가 소유격(~의)으로 쓰였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바울은 순종과 믿음을 구분하여 “믿음을 가진 순종”이라거나 혹은 “믿음 이후 따르게 되는 순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바울은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마지막 부분인 16장 26절에 이르러 다시 한번 ‘믿음의 순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소유격으로 어떤 단어를 수식하는 용례는 그 단어의 의미를 소유격 단어에 포함시키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사’라는 단어는 안부를 전하는 몸짓이나 말을 일컫는다. ‘인사’를 ‘사랑’이라는 단어의 소유격으로 수식하면 ‘사랑의 인사’가 된다. 그러면 ‘사랑의 인사’는 사랑의 표현으로써 안부를 전하는 몸짓이나 말이라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 ‘사랑의’라는 소유격 단어가 ‘인사’라는 단어의 의미를 형태로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본문의 논의로 돌아가서, ‘믿음의 순종’은 어떤 의미가 되는가? 단지 ‘순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명령에 순순히 따른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믿음의 순종’은 믿음이 순순히 따르는 것을...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2.18 추천 0 조회 18
1. ‘υΐοΰ αύτου[휘우 아우투](그의 아들)’지시대명사 ‘αύτου[아우투]’는 2절과 동일하게 1절의 ‘하나님’을 지시하고 있다. 따라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헬라어에서 ‘아들’은 항상 혈통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은 않았다. ‘파생된’의 의미를 갖기도 했다. 왕권신수설에 따라 로마에서는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기도 했고,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창6:2, 4 / 신32:8 / 욥1:6-12 / 시29:1 / 시89:6 등)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은 유대인들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Craig S. Keener 외 3, 「IVP 성경 배경 주석: 신약」, 김세윤 역, (서울: IVP, 2010), 480.) 바울은 여기서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 이어지는 두 개의 분사구를 통해 설명한다.2. ‘γενομένου[게노메누](오신)’ / ‘όρισθέντος[호리스덴토스](선포된)’3, 4절은 이 두 개의 분사구로 ‘하나님의 아들’을 설명한다. 먼저 ‘오신’이 이끄는 설명은 ‘다윗의 자손’이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를 수식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사11 / 렘23:5-6 / 렘33:14-18 / 겔34:23-31 / 겔37:24-28) ‘선포된’이 이끄는 설명은 ‘하나님의 아들’이다.여기서 ‘όρισθέντος[호리스덴토스]’라는 단어는 공표된, 선포된, 알려진, 공지된, 언급된, 결정된, 임명된, 제안된, 등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 단어는 바울이 앞에 언급했던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지시함과 동시에 ‘다윗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왔던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호리스덴토스’의 이러한 용법과 유사한 국어의 표현으로 ‘이른바’가 있다.3. ‘έν δυνάμει κατά πνεύμα άγιωσύνης[엔 뒤나메이 카타 프뉴마 하기오쉬네스](능력 안에서 거룩의 영을 따라)’여기서 바울이 ‘능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주체가...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2.12 추천 0 조회 16
1.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설명 시작바울은 1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표현으로 아포리아(의혹법)를 던졌다. 이제 아포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2~4절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한다. 정관사 ‘ό(호)’는 목적격 단수 형태를 띠고서, 바로 직전에 있는 1절의 목적절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의 역할로 쓰이고 있다.2. ‘γραφαῖς ἁγίαις[그라파이스 하기아스](거룩한 문서)’‘γραφαῖς[그라파이스]’는 책, 서류를 뜻하는 단어 ‘γραφη[그라페]’의 복수형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0회 등장하는데, 유대인들과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유대교 경전인 ‘구약성경’을 지칭한다.(James D. G. Dunn, 「로마서(상)」, 「WBC」, 김철, 채천석 편, (서울: 솔로몬, 2003), 107.) 그런데 바울은 이 단어에 ‘ἁγίαις[하기아스]’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있다. 바울은 다른 어디에서도 ‘γραφαῖς[그라파이스](구약성경)’ 뒤에 이 형용사를 쓴 적이 없다.(Douglas J, Moo, 「로마서」, 「NICNT」, 박문재 외 2인 편, 개정판 (서울: 솔로몬, 2022), 67.) 이는 ‘하나님의 복음’이 구약성경을 통해 예언된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즉, 예언서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신성한’이라는 의미의 형용사를 붙인 것이다. ‘ἁγίαις[하기아스]’는 신성한, 결백한, 종교적인, 거룩한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약성경의 예언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거룩한’ 보다는 ‘신성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생·크·림林 번역」로마서 1장 2절2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신성한 구약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2.07 추천 0 조회 18
1. 긴 편지와 긴 인사말로마서는 총 7,114단어로 이루어진다. 1세기는 로마제국의 치세로 종이가 값쌌고, 로마제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우편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흔했음에도 로마서의 분량은 흔치 않은 긴 편지이다. 또한 바울 서신중에서도 가장 확장된 양식을 보인다.1세기 그리스-로마 지역에서 일반 민중들이 주고받았던 서신을 살펴보면, 전형적인 형식의 인사말로 시작한다. 발신자를 주어로 쓰고 수신자를 여격으로 쓴 뒤 “문안하노라(χαίρειν)”를 붙이는 하나의 문장이 그것이다.(Douglas J, Moo, 「로마서」, 「NICNT」, 박문재 외 2인 편, 개정판 (서울: 솔로몬, 2022), 62.) 바울도 로마서를 제외한 다른 서신에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인사말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의 경우 인사말부를 대폭 확대하여 길게 쓰고 있다. 이에 대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아래 이유 중 일부 혹은 전부가 바울이 인사말을 길게 적고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1) 로마서 1장 13절에서 바울이 밝히고 있듯이 로마교회는 바울이 로마서를 쓰기 전까지 아직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교회이다.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이방교회에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는 이미 확고한 위치에 있었지만,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교회이기에 바울은 긴 자기소개를 건네고 있다. 자신이 개척했던 고린도교회에서도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중상하는 세력이 번지기도 했다. 따라서 한번도 방문한 일이 없는 로마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글로써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맥락 가운데 바울은 유례없는 긴 서두를 열고 있다.2) 바울은 15장 28절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 계획에...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30 추천 0 조회 20
1. 장, 절에 대하여…….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은 장과 절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처음 신약성경이 쓰인 다음부터 천년이 넘도록 교회는 장과 절이 없는 성경을 읽었다. 성경의 장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3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205년 파리 대학 교수 출신으로 나중에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스티브 랑톤(Stephen Lengton, 1150~1228)이 창안하여 라틴어 성경을 필사하면서 처음으로 성경에 장을 도입했다. 절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00년이 더 지난 뒤였다. 15세기 인쇄업자였던 로베르 엔티엔((Robert Estienne, 1503~1559)이 1551년에 처음으로 성경에 절을 구분하여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이후부터 성경을 인쇄할 때, 장과 절을 구분하여 인쇄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애초에 성경의 장과 절을 구분한 것은 어떤 문맥적 요소를 고려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책에서 특정 위치를 찾기 쉽게 하기 위한 중세 출판업의 유행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의 장, 절 구분은 성경 원전이 가지고 있었던 산문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게 했다. 또한 성경의 장, 절은 라틴어 성경을 모본으로 구분된 것이기에, 헬라어 성경에 비추어 봤을 때는 절이 문장을 나누어 버리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애석하게도 장, 절의 구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러한 작은 오류들이 어떤 경우에는 문맥의 의미를 왜곡시키기도 한다.따라서 이 프로젝트에서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장, 절을 구분하되, 원전에서 드러나는 산문적 특성과 헬라어의 문장 종결 부호를 기준으로 번역을 진행할 것이다.2. 문단 나눔에 대하여…….성경의 장, 절이 나뉘어 인쇄출판 되면서 원전에 있는 문단 나눔이 더 이상 표기되지 않게...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24 추천 0 조회 20
<로마서 제1권 소논문>바울의 새관점 논쟁1. 논쟁의 시작과 개요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신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이지만, 현재 성서신학을 중심으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는데, 이른바 ‘바울의 새관점 논쟁’이다. 논쟁의 대략은 바울 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새관점 학파’와 전통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입장의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학 논쟁이다. 새관점 학파에서는 지난 세월 기독교가 1세기 유대교와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신약성서의 복음을 잘못 해석해왔다고 주장한다.논쟁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에 따라 교회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신학계에서도 기존의 종교개혁 전통이 가지는 독단적 배타성(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보는 특성.)을 축소 시키려는 연구들이 진행됐다. 주목받았던 것은 하버드대학교 신학 학술지에 개재된 루터란 신학자 스텐달(Krister Stendahl)의 논문이다.(Krister Stendahl, “The Apostle Paul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Harvard Theological Review, 1963).) 그는 해당 논문에서 바울 신학과 종교개혁가 루터의 신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 캠브릿지 대학의 W. D. 데이비스(William David Davies)는 1세기 유대교 연구와 복음의 포괄주의(종교다원주의의 한 종류로,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기독교의 복음에 닿을 수 있다고 보는입장. 주로 기독교의 복음을 재해석하는 방향성을 가짐.)적 성격을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1세기 유대교 연구에 영향을 받아 듀크 대학교의 샌더스(Ed Parish Sanders)는 1977년 1세기 유대교 연구를 집대성하는 책을 출판한다.(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20 추천 0 조회 21
✤ 편집비평이란?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지금까지 보존 및 발견된 성경 필사본들을 비교연구 하여 확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되어 남아있는 신약성경의 필사본은 5천8백여 개에 달한다. 성경 필사본들은 신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와 발견 장소에 따라 조금씩 이문이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필사자가 실수로 누락 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 하거나, 실수로 다른 글을 중간에 넣거나, 의도적으로 원본과 다른 문단을 삽입하거나, 서로 다른 출처를 임의로 합치하거나 하는 경우들이다. 물론 현재로서 정확히 어떤 연유로 사본들 사이에 이러한 편집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비교 대조해볼 수 있는 사본의 수가 방대한 만큼 원문을 유추해 내는 정확도는 상당한 신빙성을 갖는다. 사본들의 편집 양상을 비교하여 원문과 사본 사이의 편집된 부분을 유추해 내는 작업을 ‘편집비평’이라고 한다.세계의 수많은 학자가 이러한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성경 본문의 ‘편집설’이나 ‘위작설’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슈로, 이를테면 고린도전서의 편집비평이 있다. 사본과 원어를 연구해 볼 때, 고린도전서가 사실은 바울의 두 개 혹은 서너 개의 편지들을 이어 붙여놓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혹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가 초기 사본에는 누락되어 있고, 3세기 이후의 사본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며, 요한복음이 아니라 다른 공관복음서에 끼워져 있다가 점차 요한복음에 위치하게 된다. 이로 보건데 아마도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원문에는 없었으나 후대에 편집되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편집비평의...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17 추천 0 조회 21
“일어나 함께 가자”1.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 성육신의 사건이 문자로 기록됨.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헬라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이 복음의 소식은 가히 신성모독의 파렴치한 이야기로 들렸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이 된 신이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죽음을 당했다. 이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결코 곱게 들릴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헬라인들의 인식 속에 신은 거룩하고, 물질은 그로부터 유출됐다고 하더라도 결코 신의 완전함을 따라올라가지 못할 악한 것이었다.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였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존재성을 부여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었지만, 신은 그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자였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물질을 입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마치 인간이 개를 구원하기 위해 개가 되었다는 식이며, 판사가 범죄자를 구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이며, 왕이 노예를 구원하기 위해 노예가 되었다는 식과 다를바 없는 이야기였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은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그 자체로 모순처럼 보이며, 일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인간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죄값을 질 수 있는 존재는 없다.그러나 이 성육신의 신비로운 복음은 다시 그 복음의 원리 대로 한번 더 불완전함으로의 역행을 거듭하게 된다. 바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된 문자가 된 것이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시공을 겪은 하나님의 사건은 그 시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전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10 추천 0 조회 21
“성경의 한글 번역 역사”1. 최초의 한국어 성경187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는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를 중국 선교사로 파송했다. 중국 만주에 이른 이들은 의주에서 한국인 청년 넷을(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김진기) 만나게 된다. 이들과 협력하여 두 선교사는 한국어 성경을 번역한다. 그렇게 1887년 최초의 한국어 성경인 「예수셩교젼셔」가 완간되었다.(장동수,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32.)2. 최초의 공인된 한국어 성경한편, 1885년 개신교 최초의 한국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 wood, 1859~1916)’와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가 한국에 도착했다. 이들로부터 한국에 본격적인 성경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공인으로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번역 및 출판 사업을 시작하여 1887년 누가복음이 처음 번역-출판되었다. 그리하여 1900년 신약성경 완역본 「신약젼셔」가 나왔고, 구약은 1911년 「구약젼서」가 나왔다. 이 성경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최초의 공인 번역이다. 그러나 이 번역은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 한문성경과 미국 표준성경(ASV)를 한국어로 재번역한 중역 성경이었다. 당시 선교사들과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통으로 한가지 언어로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경 번역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원문을 참고하여 영미성경을 보는 외국인 선교사들과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을 보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이원화 작업을 통하여 번역 작업을 했다.(장동수,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34.)최초의 공인된 한글 성경이 나온 1911년부터 성서공회는 번역위원회를 개역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출판되고 있는 한글 성경을 다듬고 고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6년에 이르러 문체, 어휘, 표현을 대폭 바꾼 「셩경젼셔 개역」이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02 추천 0 조회 23
 “이 성경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서론: 대수학의 교훈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면 거의 대부분의 복잡한 생각들은 정리된다. 어떤 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문제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열한 뒤에 그 요소들 중 문제나 상황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변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 변할 가능성이 없는 것을 구분해 놓으면, 그 문제나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대입지망생이 자신의 시험 점수를 가지고 어떤 대학에 진학할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자. 그럼 대입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점수’, ‘자신이 최소한 합격이 가능한 대학 목록’, ‘내가 망설이지 않고 확신있게 가고 싶어 학과’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변하는 것에는 ‘예비로 합격 가능한 대학 목록’, ‘내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고려하고 있는 학과’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지침들이 떠오르게 된다. 이를테면, 내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학과에 대한 조사를 통해 원하는 학과의 범위를 더 좁히는 것이 있겠다. 또 예비로 합격 가능한 대학들의 경쟁률을 조사해볼 수도 있다. 이렇듯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 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하여 합리적으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여기 우리가 이제 마주할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성경의 특정한 구문이나 문장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은 무려 2000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리고 성경을 쓴...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3.12.30 추천 0 조회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