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사악한 괴물이 있다.이 괴물의 본질은 미움이다.이 괴물은 미움을 좋아한다.괴물이 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 처럼 미움을 심는 것이다.미움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 가장 쉽고, 결국은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첫번째 계략으로 좋기 때문이다.이 괴물을 물리치고자 이 괴물을 공격하면이 괴물은 그 미움을 받아 더욱 크고 강해진다.괴물이 미워서 미워할 수록 괴물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이 괴물을 물리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괴물을 물리치려는 시도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이 괴물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무관심이다.괴물은 관심을 좋아하며, 자신에게 주목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그러나 더이상 그 괴물을 아무도 미워하지않고 관심도 주지 않을 때 괴물은 점점 작아지며 그 힘을 잃어간다.이 세대 그리스도인을 크게 공격하고 있는 괴물이다. 이 괴물은 때론 악한 행실이라는 모습으로, 때론 이단의 모습으로, 때론 거짓말의 모습으로, 때론 세상의 악한 문화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수호하고 거짓과 싸워야 한다. 기독교는 전투적인 종교다.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싸우는가?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무엇인가?진리를 아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 거짓말하는 자들과 대화하지 않는 것, 성령 충만하는 것,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우리가 쓰는 무기 어느 것도, 적을 상대하거나 쓰러뜨리는 용도의 무기는 없다..(사실 그들은 이미 쓰러지지 않았는가? 우린 이미 이기지 않았는가??)일전에 CBS에서 신천지에 대해 크게 보도 되었다.기독교 언론사로써 이단의 잘못 된 것을 파해치고 보도하는 것이 옳다고 보여지겠지만..나는 애써 보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과연 이단의 잘못된 것을 몰라서 이단에 빠지는가..?제대로 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Monologue 숲지기 2015.04.08 추천 0 조회 26
=============================죄인 된 우리를 십자가를 통하여 은혜로 구원해 주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기도로 무엇인가 구할 때는 마음에 자신의 욕심이 있어서는 안된다. 어찌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자가 자기의 정욕을 위하여 구한단 말인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이든 구할 때의 자세는 마땅히 그 동기마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해야 한다. 오롯이 하나님께 감사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만을 위하여, 철저히 이런 자세로 드린 기도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요. 응답하시는 기도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따라서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돈에 대해 완전히 초월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항간에 떠도는 재물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은 재정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고백만 하고서는 그 것이 마치 결국은 부를 가져올 것 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잘못됐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부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돈과 재물에 있어서 욕심과 유혹의 동기를 완벽히 상실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깊이 생각해 본 결과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욕망이란 사실은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들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개인의 욕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과다한 욕망'이나 '교만'이 근본이 되어 나오는 '욕심' 혹은 '이기심'을 구별시켜 놔야 한다. 이런 것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악한 것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을 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다만 욕심이나 이기심 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는' 모든 '욕망'은 하나님께 반하는 것이요....
Monologue 숲지기 2015.03.30 추천 0 조회 21
성경에서 '우연히'라고 번역 된 히브리어 '미크레'는 '카라'라는 기본어근에서 유래했다.'카라'는 '일이 생기다', '대들보를 놓다', '지정하다'라는 뜻이다.집을 짓기 위해 기초를 세우는 일인 '대들보를 놓다'혹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지정하다'라는 뜻으로 보아 히브리어에서의 '우연'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일이며,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음을 유추하게 되었다. 이어서 묵상해 보니,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차근차근 생각해 볼때 우주 만물과 우리 인간의 모든 삶은 하나같이 우연으로 시작된다. 우연이 없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일이 어떤 원인으로 일어났다고 할수는 있어도 다시 그 원인의 원인으로 따라 올라가면 결국은 '우연'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우연'은 사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일이다. 창조 이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묵상을 통해 미래의 무엇을 궁금해 하거나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더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삶에 아주 깊숙하고 세밀하게 관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우연(-지정하심)'을 기대하게 되었다.그리고 살아가면서 있는 '우연'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Monologue 숲지기 2015.03.12 추천 0 조회 21
나라 없는 설움을 아는가?나는 모른다.나라를 빼앗긴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음으로나라를 되찾기만 한다면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으매 한이 없겠다는 그 설움을 나는 모른다.그러나 세대가 지난다고 해서과거의 쓰린 기억과 사무친 다짐을 잊는다면사사기의 그 우둔한 백성을 어찌 욕할 수 있겠으며,올챙이적 기억 못하는 개구리를 어찌 조롱할 수 있겠는가?태극기 하나 걸어 놓는다고 애국심이 고취되나?그러나 생각해 보라불과 반세기 전 어떤 시인은살아 생전에 그 날이 오면은드는 칼로 자기 몸의 가죽을 벗겨북을 만들어 들쳐매고는 행렬에 앞장서겠다 시를 썼건만고작 태극기 하나 걸어 놓는 것이어찌 그리 간절하지 않단 말인가.. 고작 태극기 하나..이 백성이 부디 나라가 없는 설움을 잊지 않기를..=================================================그 날이 오면 - 심훈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Monologue 숲지기 2015.02.28 추천 0 조회 21
픽트리 성경어플을 일단 한번 켜면 금방 시간을 잡아먹는다.완전 재밋다.묵상하다가 혹은 혼자 생각하다가도 궁금한게 있으면바로 픽트리성경어플로 원문의 뜻을 살펴본다.같은 단어로 된 다른 구절도 찾아줘서 폭넓은 이해에 엄청 큰 도움을 준다.그런데 오늘 흥미로웠던 단어 하나를 묵상하다가...개역개정판에는 연단이라는 단어가 수록된 구절이 18개나 있다. 그러나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대부분 '시험'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고 '단련'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구절이 4개 있다.욥기의 유명한 구절인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는 힘든 일을 격고 있을 때 우리에게 위로를 주던 구절이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이것은 주님이 날 연단하고 있는거야. 이 연단이 끝나고 나면 나는 정금처럼 될꺼야!'하고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원래 이 구절의 의미는 자신의 정의로움을 주장하고 있는 욥이 다음과 같이 한탄하고 있는 구절이다. "주님이 나를 시험해 본다면 내가 얼마나 정금같은지 아실텐데!"이 사실은 지난해 4월 묵상했던 부분이다.그런데 오늘 문득 그렇다면 주님이 나를 연단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개역개정에서 '연단'이라고 번역 된 단어의 원어는 대부분 '시험'의 의미였다.연단이라고 생각할 때 변화의 주체는 내가 된다. 즉 연단의 목적이 '나의 변화'에 있다. 그러나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변화가 아닌 승인의 개념이 되고 승인의 주체는 주님이 된다.주님은 나를 정금처럼 만들고자 나를 연단하지 않으신다.주님은 나를 승인하고자(받아들이시고자) 시험하신다.연단의 결과는 내가 정금처럼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복음에 합당하지 않다.그러나 시험의 결과는 하나님의 용서(예수님에 의한)와 은혜가 된다. 복음에 합당하다. 고난 받을 때 주님께 연단받고 있다고 말하지...
Monologue 숲지기 2015.02.06 추천 0 조회 19
공진주맞아요 오빠 근데요 저같은 경우는 기대감이 많이 없거든요 찬송생활의 권능을 읽고 보통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삶의 어려움 있죠, 그런 어려움이 와도 어쨌거나 하나님은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려고 노력을 하는데요그래서인지 물질적인 어려움이 와도 집에 안좋은 일이 생겨도 그 상황이 전적으로 해결되는 모습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못하겠더라구요 (안하는건가; 믿음이 부족한건가?) 솔직한 마음으로는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으면 좋겠고 가정사문제가 있으면 그런것도 다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이런 기도는 너무 사치같고...그렇다고 말도 안되는거를 기도하진 않거든요. 이거랑 또 연결되는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만사형통인데요 보통 만사형통하게 해주세요 하잖아요근데 일반적으로는 내가 원하는대로 잘 되고 잘 풀리는게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할텐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만사형통은 그게아니잖아요 때로는 고난과 역경도 주시잖아요 그래서 인간적으로봤을때 좋은 상황이든 안좋은상황이든 어떤상황에서라도 감사하며 순종하고하나님 뜻에 맞게 사는게 만사형통이지 않을까로 결론을 지었는데, 여튼 그래서 제말은요 당당하게 제가 원하는걸 기도 못하겠다는거죠.. 쓰면서 드는 생각은 믿음의 부족이 아닌가 싶네요 전에 주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행복할 권리가 분명 있다고 했는데!!,그냥 이렇게 하는 기도가 너무 인간적이고 사치가 아닐까 싶은 맘이 젤 큰거같아요 그리고또다른 문제는 기대감이 없다는거...그런데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제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 뜻에 맞다면 주실거같아요=========================================우선 서두에서 '어쨌거나 하나님은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는다'라는 말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요! 즉 진주는 매 순간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대하고 있고 그래서 감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리고 두번째 '나...
Monologue 숲지기 2015.01.17 추천 0 조회 23
한국 교회에 순복음 때문에 다른 교단 신도들이 가지고 있는 큰 오해 중 하나는 '기복신앙'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초보적 수준에서나 허용되는 신앙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나도 "언제까지 달라고만 할껍니까?"라는 말을 설교시간에 참 많이 들어왔다.결론을 말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바라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필수조건이다. 언제나 필요하며 신앙이 성숙할 수록 더욱 크고 많은 것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쁘게 구하게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받을 수는 없는 사랑이며 오직 줄 수만 있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줄 때만이 충족된다. 따라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라면 그 분께 끊임없이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기 위해선 구해야한다.(야고보서) 하나님은 내가 원해서 구하는 것을 주실 때 가장 기뻐하신다.그러나 많은 현대 한국 교인들은 구하는 것에 있어서 당당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구하지도 않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당신이 구하였다면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구함을 통해 이 땅에도 이루어 졌을 것인데,당신이 구하지 않음으로 해서"하나님이 손해보고, 나도 손해보았다!"할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돌이켜 생각해보라!!
Monologue 숲지기 2015.01.17 추천 0 조회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