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복음을 생각하고, 알고, 이해하고, 외칩니다.

<로마서 제1권 소논문>바울의 새관점 논쟁1. 논쟁의 시작과 개요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신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이지만, 현재 성서신학을 중심으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가 있는데, 이른바 ‘바울의 새관점 논쟁’이다. 논쟁의 대략은 바울 신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새관점 학파’와 전통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입장의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학 논쟁이다. 새관점 학파에서는 지난 세월 기독교가 1세기 유대교와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신약성서의 복음을 잘못 해석해왔다고 주장한다.논쟁의 시작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에 따라 교회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신학계에서도 기존의 종교개혁 전통이 가지는 독단적 배타성(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다고 보는 특성.)을 축소 시키려는 연구들이 진행됐다. 주목받았던 것은 하버드대학교 신학 학술지에 개재된 루터란 신학자 스텐달(Krister Stendahl)의 논문이다.(Krister Stendahl, “The Apostle Paul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Harvard Theological Review, 1963).) 그는 해당 논문에서 바울 신학과 종교개혁가 루터의 신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 캠브릿지 대학의 W. D. 데이비스(William David Davies)는 1세기 유대교 연구와 복음의 포괄주의(종교다원주의의 한 종류로,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기독교의 복음에 닿을 수 있다고 보는입장. 주로 기독교의 복음을 재해석하는 방향성을 가짐.)적 성격을 밝히려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1세기 유대교 연구에 영향을 받아 듀크 대학교의 샌더스(Ed Parish Sanders)는 1977년 1세기 유대교 연구를 집대성하는 책을 출판한다.(E. P. Sanders,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A Comparison of Patterns...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20 추천 0 조회 19
✤ 편집비평이란?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지금까지 보존 및 발견된 성경 필사본들을 비교연구 하여 확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되어 남아있는 신약성경의 필사본은 5천8백여 개에 달한다. 성경 필사본들은 신약성경의 모든 부분을 공통으로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시대와 발견 장소에 따라 조금씩 이문이 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필사자가 실수로 누락 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 하거나, 실수로 다른 글을 중간에 넣거나, 의도적으로 원본과 다른 문단을 삽입하거나, 서로 다른 출처를 임의로 합치하거나 하는 경우들이다. 물론 현재로서 정확히 어떤 연유로 사본들 사이에 이러한 편집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비교 대조해볼 수 있는 사본의 수가 방대한 만큼 원문을 유추해 내는 정확도는 상당한 신빙성을 갖는다. 사본들의 편집 양상을 비교하여 원문과 사본 사이의 편집된 부분을 유추해 내는 작업을 ‘편집비평’이라고 한다.세계의 수많은 학자가 이러한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성경 본문의 ‘편집설’이나 ‘위작설’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슈로, 이를테면 고린도전서의 편집비평이 있다. 사본과 원어를 연구해 볼 때, 고린도전서가 사실은 바울의 두 개 혹은 서너 개의 편지들을 이어 붙여놓은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혹은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가 초기 사본에는 누락되어 있고, 3세기 이후의 사본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며, 요한복음이 아니라 다른 공관복음서에 끼워져 있다가 점차 요한복음에 위치하게 된다. 이로 보건데 아마도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원문에는 없었으나 후대에 편집되어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편집비평의...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17 추천 0 조회 20
“일어나 함께 가자”1.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 성육신의 사건이 문자로 기록됨.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 헬라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들에게 이 복음의 소식은 가히 신성모독의 파렴치한 이야기로 들렸다. 신이 인간이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이 된 신이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죽음을 당했다. 이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결코 곱게 들릴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헬라인들의 인식 속에 신은 거룩하고, 물질은 그로부터 유출됐다고 하더라도 결코 신의 완전함을 따라올라가지 못할 악한 것이었다.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였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존재성을 부여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었지만, 신은 그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자였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물질을 입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마치 인간이 개를 구원하기 위해 개가 되었다는 식이며, 판사가 범죄자를 구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식이며, 왕이 노예를 구원하기 위해 노예가 되었다는 식과 다를바 없는 이야기였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은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그 자체로 모순처럼 보이며, 일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인간이 아니고서는 인간의 죄값을 질 수 있는 존재는 없다.그러나 이 성육신의 신비로운 복음은 다시 그 복음의 원리 대로 한번 더 불완전함으로의 역행을 거듭하게 된다. 바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된 문자가 된 것이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시공을 겪은 하나님의 사건은 그 시대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로 전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인간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10 추천 0 조회 19
「복음이 죄인에게 전하는 서신」 중 18장...이번 장에서는 단편의 한 소설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회에서 어떻게 ‘복음’이 ‘행위주의’로 대체되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야기될 소설은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좀처럼 ‘행위주의’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행위를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좀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한편의 ‘알레고리 소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순수한 복음으로 출발한 교회가 점점 행위주의와 율법주의로 빠져드는 모습」을 「체육공원에 입장할 수 있는 순수한 조건이 시간이 지날수록 행위주의로 가게 되는 모습」에 비유하였습니다. 모쪼록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현시대 한국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깨닫고 직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초호화 체육공원 설립 및 무료이용 안내문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의 설립 취지는 체육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체육인들의 안락하고 호화로운 여가를 목적으로 설립되고 있습니다.저희 공원은 이러한 설립 목적에 따라 오직 체육을 사랑하는 체육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하였습니다.현재 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은 완공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으나 워낙 어려운 공법의 시공들로 인해 완공 시점을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려움으로 인하여 미정에 두었습니다.따라서 저희는 완공되는 시점을 기점으로 일시에 공고하여 체육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즉시 공원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저희 초호화 체육공원은 오직 체육을 사랑하시는 분들만 이용 가능하며 일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다는 점 다시 한 번 알려드리며, 완공 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어떤 도시에 이와 같은 초호화 체육공원 안내문이 공표되었다.이 공원 안내문은 순식간에 도시 언론에 공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이 초호화 체육공원이 어떤...
복음 Insight 숲지기 2024.01.03 추천 0 조회 17
기독교 복음의 은혜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죄에 빠졌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께 이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이 가진 죄의 삯을 대신 치러주셨다. 따라서 인간이 이를 믿고 받아들이면, 그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 앞에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여기서 ‘값(ransom)’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것이다. 이 ‘값(ransom)’은 믿는 사람의 모든 죄를 사할 수 있을 만큼 비싼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비싼 것이 우리에게 공짜로 제공된다. 이것을 은혜라고 부른다.기독교 복음에 있는 죄와 의의 전가를 이야기 할 때 기준이 되는 개념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의식하는가?(의롭게 여기는가? 혹은 부끄러워하는가?)’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근본적으로 죄인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이 개념이 인간 안에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대신 갚으셨다는 말은 바로 이 개념을 무용하게 하셨다는 뜻이다.이렇게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볼 때 도출되는 기독교 윤리의 전제원칙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선해야하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이는 기독교의 복음과 정면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행동이 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무얼 대든지 나의 행동에 어떤 이유를 붙인다면, 이는 자신의 행위를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기독교의 복음과 모순된다. 그리스도인은 행위를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선을 바라보고 있기에 점점 닮아가게 되는 존재여야 한다. 일상의 예를 통해 이를...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4.01.02 추천 0 조회 13
“성경의 한글 번역 역사”1. 최초의 한국어 성경187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는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와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를 중국 선교사로 파송했다. 중국 만주에 이른 이들은 의주에서 한국인 청년 넷을(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김진기) 만나게 된다. 이들과 협력하여 두 선교사는 한국어 성경을 번역한다. 그렇게 1887년 최초의 한국어 성경인 「예수셩교젼셔」가 완간되었다.(장동수,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32.)2. 최초의 공인된 한국어 성경한편, 1885년 개신교 최초의 한국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 wood, 1859~1916)’와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가 한국에 도착했다. 이들로부터 한국에 본격적인 성경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성서공회와 미국성서공회의 공인으로 대한성서공회가 성경번역 및 출판 사업을 시작하여 1887년 누가복음이 처음 번역-출판되었다. 그리하여 1900년 신약성경 완역본 「신약젼셔」가 나왔고, 구약은 1911년 「구약젼서」가 나왔다. 이 성경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최초의 공인 번역이다. 그러나 이 번역은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성경이 아니라 한문성경과 미국 표준성경(ASV)를 한국어로 재번역한 중역 성경이었다. 당시 선교사들과 우리나라 학자들이 공통으로 한가지 언어로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경 번역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원문을 참고하여 영미성경을 보는 외국인 선교사들과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을 보는 우리나라 학자들이 이원화 작업을 통하여 번역 작업을 했다.(장동수, 「신약성서 사본과 정경」,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234.)최초의 공인된 한글 성경이 나온 1911년부터 성서공회는 번역위원회를 개역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출판되고 있는 한글 성경을 다듬고 고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6년에 이르러 문체, 어휘, 표현을 대폭 바꾼 「셩경젼셔 개역」이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4.01.02 추천 0 조회 22
복음의 역사는행위와 전적인 은혜 사이의 투쟁의 역사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고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디아 교회에는율법의 행위를 복음에 첨가시키는 세력들이 들어온다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율법주의를 경고시킨다.     시간이 지나 교회 핍박의 시대가 도래하자교회는 고문을 당하고도 '배교'하지 않은 자들을'존경'하기 시작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보다얼마나 '잘 버텨 냈는가'가신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위대한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은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구원'과 결부시키려는'이레니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오직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논증했다.     중세 교회가 부패하자유럽 곳곳에서 이단들이 기승을 부렸다.이단 지도자들은 부패한 교회의 성직자들보다훨씬 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민중들은 그 이단 지도자들에게진짜 '복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츰 교회도 '윤리'와 '도덕'을강조하기 시작했다.이윽고 부패와 만나 중세 카톨릭의'공로주의'가 탄생한다.     종교개혁가들은 '공로주의'에 반대하고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복음을 기치로종교개혁을 시행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유럽 전역에 불어닥친 '자유주의'의 물결은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따라서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타이틀은주체적 선택과 윤리적 진보를 강조하는 모양으로왜곡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유럽 개신교회의 90%이상이 '자유주의'에넘어갔고, '자유주의'에 대항하여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각성운동'은오직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고자 하는복음주의 운동 이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를 등에 업은 세력은'전천년설'을 기반으로 하는세대주의,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잠식당했다.이들은 '세속정치'의 영향력을 행사하며,교조적, 근본주의의 아집으로 뭉쳤다.그리고 복음은 다시 잊혀졌다.          20세기 중엽,'신복음주의' 물결이 번지기 시작했다.이들은 '합리적 신앙'과 '기독교 변증'을 토대로'복음'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다시 위치시키고자 했다.     신복음주의의 대표격으로 불리는'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위시하여신학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C.C.C. 창시자인 '빌 브라이트' 등신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부흥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문화적으로 부상하면서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반하여'반이성주의'와 '인본주의(휴머니즘)'이 크게 유행하였다.이에 '신복음주의'의 합리적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은크게 감소하였고,그 틈에 다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복음 Insight 숲지기 2023.12.30 추천 0 조회 19
 “이 성경 본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서론: 대수학의 교훈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면 거의 대부분의 복잡한 생각들은 정리된다. 어떤 문제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문제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열한 뒤에 그 요소들 중 문제나 상황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변할 가능성이 있는 것과, 변할 가능성이 없는 것을 구분해 놓으면, 그 문제나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예를들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대입지망생이 자신의 시험 점수를 가지고 어떤 대학에 진학할지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자. 그럼 대입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점수’, ‘자신이 최소한 합격이 가능한 대학 목록’, ‘내가 망설이지 않고 확신있게 가고 싶어 학과’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변하는 것에는 ‘예비로 합격 가능한 대학 목록’, ‘내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고려하고 있는 학과’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지침들이 떠오르게 된다. 이를테면, 내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학과에 대한 조사를 통해 원하는 학과의 범위를 더 좁히는 것이 있겠다. 또 예비로 합격 가능한 대학들의 경쟁률을 조사해볼 수도 있다. 이렇듯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 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하여 합리적으로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여기 우리가 이제 마주할 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성경의 특정한 구문이나 문장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은 무려 2000년 전에 쓰인 책이다. 그리고 성경을 쓴...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3.12.30 추천 0 조회 20
1. 서론: 논쟁의 요약전통적으로 기독교의 구원론에서는 커다란 논쟁 하나가 있는데 바로 [인간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행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의지적 선택을 요구하는가?]의 논쟁이다. 이 논쟁은 4세기 기독교 교부였던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를 정죄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펠라기우스는 구원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는데, 어거스틴은 이를 정죄하면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이후 중세를 지나면서 반(半)펠라기우스주의가 있었고, 이 것이 종교개혁을 지나면서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후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로 이어졌다.이 논쟁에서 양편은 모두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양편 모두 인간은 타락한 죄인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얻는 믿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부터 시작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인간의 의지적 선택이라는 주장으로 부터 시작한다. 각각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면, 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구원이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수동적인 입장에 서 계시며 따라서 무능하신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 논쟁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전제에서 그 차이를 발하여, 하나님의 속성에서 각각이 문제들이 드러난다. 인간론에서 시작된 논쟁이 신론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2. 논쟁을 이끄는 성서주석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성경이 정경화된 이후 기독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적 논쟁들의 외연은 성서로 제한되었다. 이로써 교회의 논쟁들의 서로 다른 각 진영에 속한 인물들은 자신의...
신학과 철학 숲지기 2023.12.24 추천 0 조회 22
그 사건최초의 인간이 이 지구상에 등장하기 이전, 나무들이 먼저 땅에 존재했다. 그때의 나무들은 의미도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무들은 어떤 의미나 목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조차 없었다. 나무들이 그런 종류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어떤 것도 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이 출현했다. 사람은 나무와 달리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는 스스로 어떤 존재로서 존재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무를 어떤 의미나 목적을 가진 존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는 나무를 의자로 삼고, 나무를 도낏자루로 삼으며, 나무를 지팡이로 삼기도 했다. 어떤 의미나 목적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의 출현과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는 인간과 같은 가능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등장하는 순간 지상의 모든 나무들에게 동시에 이 일이 일어났다. 바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일. 인간의 등장은 나무들의 세계에서 전 지구적인 사건을 일으켰다. 이 일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무를 일시에 깨웠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의식의 전이는 정작 인간 스스로에게는 알려지지도 않은 채 한순간에 일어났다. 나무가 아닌 어떤 존재의 등장이 모든 나무에게 가능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모든 나무가 필연적으로 어떤 의미나 목적을 부여받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지만, 나무는 그럴...
디바인트리 숲지기 2023.12.20 추천 0 조회 24